회사 동료 셋이 같은 날 구조조정 통보를 받았다. 하나는 고객 응대, 하나는 데이터 입력, 하나는 콘텐츠 요약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 주에 뉴스에서는 오픈AI가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규모는 조 단위였다. AI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말은 몇 년째 들어왔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그 일자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투자금이 모이는 곳과 일자리가 생기는 곳은 다르다
AI 관련 투자금은 대부분 GPU 구매, 데이터센터 건설, 모델 훈련 비용으로 빠진다.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회사,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소수의 AI 연구원들에게 돈이 집중적으로 흘러간다. 이 구조에서 신규 고용은 꽤 제한적이다.
AI 투자의 상당 부분이 몰리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투자 규모에 비해 직접 고용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오픈AI의 전체 직원 수는 1500명 남짓이다. 연간 수십조 원을 굴리는 회사치고 고용 규모가 작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걸 자동차 산업이나 건설업이 한창 성장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차이가 바로 보인다. 그 시절 투자는 공장 노동자, 납품 업체, 정비소, 인근 상가까지 연쇄적으로 고용을 만들었다. 100억짜리 공장이 지역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식이었다. AI 투자금은 그런 식으로 퍼지지 않는다. 기술 기업의 매출은 올라가는데 그 돈이 광범위한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생산성이 오르면 고용이 늘기보다 줄 수도 있다
흔히 기술 발전이 새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타이밍과 속도가 문제다. 생산성이 오르면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늘어도 추가 고용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생긴다.
실제로 몇몇 IT 기업들은 AI 코딩 보조 도구를 도입한 뒤 개발자 채용 공고를 줄이고 있다. 고객 서비스, 번역, 문서 작업처럼 사람이 하던 루틴 업무들이 줄어드는 반면, 그 자리를 대신할 신규 직무는 훨씬 느리게 생기고 있다. 직무 수요가 줄어드는 속도가 새 직무가 생기는 속도보다 빠른 셈이다.
산업혁명 때도 방직공이 사라지고 기계 관리자가 생겼다. 그 전환에는 수십 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사회적 충격이 있었다. AI는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게 지금의 차이다. 속도 자체가 문제인 이유는, 재훈련이나 이직 준비에 드는 시간이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건 맞는 말인데, 그 혜택이 고용 형태로 분배되지 않으면 체감이 달라진다.

새 직업이 생기긴 한다, 그런데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윤리 담당자, 머신러닝 엔지니어. 실제로 이런 직무들은 생기고 있고 연봉도 높은 편이다. 근데 이 직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컴퓨터공학 배경, 파이썬 코딩 능력, 수학적 이해가 없으면 진입 자체가 어렵다.
콜센터에서 10년 일한 40대 직원이 AI 관련 직무로 전환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어렵다. 정부나 기업에서 재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긴 하는데, 수개월짜리 부트캠프로 소화할 수 있는 기술의 수준이 있다. 데이터 라벨링이나 AI 검수 같은 보조 직무는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지만, 임금이 낮고 고용 안정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새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근데 그 일자리가 기존에 일을 잃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건 아닌 경우가 많다. 기술 수준, 나이, 언어, 지역 같은 변수들이 전환 가능성을 좁힌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해도 새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은근 간과되는 부분이다.

기업이 AI에 쓰는 돈은 인건비 절감으로 회수한다
AI 도입의 가장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는 인건비 절감이다. 기업들이 AI 솔루션에 투자할 때 이 기능을 사람이 하면 얼마가 드는가라는 계산이 배경에 깔린다. 법률 문서 검토, 광고 카피 초안, 데이터 분류, 이미지 태깅 같은 업무는 외주 인력이나 계약직으로 처리되던 영역이었다.
이게 AI로 대체되면 비용이 줄고 이익은 주주에게 돌아간다. 그 수익이 다시 고용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거나, 아예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팀 5명으로 예전 50명이 하던 일을 한다는 걸 자랑처럼 내세우는 분위기도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45개가 사라진 이야기다.
생각보다 이 구조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중견기업들도 AI 콜센터, AI 문서 요약, AI 채용 스크리닝을 도입하는 속도가 올라가고 있다. 절감된 비용이 재투자로 돌아와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론은 있지만, 현장에서는 절감에서 이익으로, 다시 주주 배당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더 빠르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혜택과 피해가 같은 곳에 가지 않는다
AI 투자 혜택은 특정 도시, 특정 직군에 집중된다. 새로 생기는 고연봉 AI 직무들도 대도시 테크 허브 안에 있다. 반면 자동화로 타격을 받는 직군은 지방 공장 노동자, 소규모 사무직, 콜센터 직원들인 경우가 많다.
지역으로도, 소득 계층으로도 피해와 혜택이 교차하지 않는 구조다. 서울의 AI 스타트업이 수백억 투자를 받아 성장하는 동안, 지방 콜센터 직원들의 고용 불안은 커지는 식이다. 두 그룹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AI 시대 일자리 대책을 이야기할 때 이 지역 불균형을 다루지 않으면, 숫자로는 고용률이 유지되더라도 체감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전체 실업률은 괜찮아 보이는데 특정 지역, 특정 직군, 특정 연령대의 고용 상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도권과 지방의 AI 관련 채용 공고 수 격차는 꽤 크다.
낙관론이 틀린 건 아닌데, 속도가 다르다
인터넷도 처음엔 인쇄업, 여행사, 음반 산업을 죽인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산업들의 규모는 크게 줄었다. 동시에 유튜버, 앱 개발자, 디지털 마케터라는 새 직종도 생겼다. AI도 장기적으로는 비슷한 그림이 될 수 있다.
근데 장기적으로가 얼마나 긴지가 문제다. 10년? 20년? 그 사이에 일자리를 잃은 40~50대 노동자들의 재취업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가. 새 직종이 생겨도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면, 피해를 받은 집단에게 낙관론은 별 위로가 안 된다.
낙관론이 다루지 않는 중간 구간이 있다. 기술이 사회를 바꾸는 건 맞는데, 그 전환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AI 관련 뉴스가 쏟아질수록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과 내 일자리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 모른다.
지금 당장 직무 전환을 결정하거나 새 기술을 배울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일 중 어느 부분이 자동화될 수 있고 어느 부분은 그렇지 않은지를 한 번쯤 분리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막연한 불안보다 낫다. 그 분석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