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꼭 한 번씩 떠오르는 여수엑스포
매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이 다가오면 뉴스에서 기후변화 얘기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수 쪽 소식을 보면 꼭 한 번씩 ‘여수엑스포’라는 단어가 같이 나온다. 2012년에 열렸던 그 박람회 말이다. 벌써 13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이 이름이 기후 얘기랑 같이 묶여 나오는 걸까. 주변에 여수 여행 다녀온 사람한테 물어봐도 ‘거기 뭔가 큰 건물들 있긴 한데 좀 썰렁하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몇 년 전 여수 갔을 때 엑스포 부지를 지나가면서 ‘이게 그 여수엑스포인가’ 싶어서 차를 세웠던 기억이 있다. 지구의 날 주간에 맞춰서 이 거대한 유산을 한번 제대로 뜯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여수엑스포, 왜 하필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었나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공식 주제는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이었다.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93일 동안 열렸고, 국제박람회기구(BIE)가 공인한 인정박람회였다. 그때 이 주제를 왜 바다로 잡았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꽤 분명했다. 1993년 대전엑스포는 ‘과학과 기술’, 2010년 상하이엑스포는 ‘도시’를 다뤘다면, 여수는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당시에 이미 해양 산성화, 해수면 상승 얘기가 국제 환경 의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근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흔히 ‘여수엑스포 = 환경 박람회’라고 단순하게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해양 산업 진흥과 기후 대응이 섞여 있었다. 공식 발표 기준으로 관람객이 800만 명을 넘었고, 참가국은 100여 개국에 달했다. 숫자만 보면 꽤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여수선언(Yeosu Declaration)이라는 문서도 채택됐는데, 개발도상국 해양 역량 강화를 위한 ‘여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사후 활용 문제,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됐을까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엑스포가 끝난 다음이 문제였다. 부지도 상당히 넓고, 빅오(Big-O), 스카이타워, 아쿠아플라넷 여수, 엑스포홀 같은 시설이 통째로 남았다. 이걸 어떻게 굴리느냐가 13년째 풀리지 않은 숙제인 셈이다.
실제로 사후활용 담당 공공기관이 몇 차례 바뀌었고, 민간 매각 시도도 여러 번 있었다. 흔히 ‘엑스포는 끝나면 다 방치된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상하이, 밀라노는 도심과 붙어 있어서 재개발이 그나마 수월했는데, 여수는 수도권에서 멀고 교통도 제한적이다. 주변에서도 ‘여수 가면 좋은데 엑스포 부지는 좀 애매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이거다. 거대한 시설을 유지하는 데만 연간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데, 평일에 사람이 없으면 구조적으로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아쿠아플라넷 여수는 민간 위탁으로 비교적 활발하게 운영되는 편이고, 빅오쇼도 여름 성수기에는 관광 콘텐츠로 쓰인다. 반면 국제관으로 쓰였던 일부 건물은 용도 전환이 쉽지 않아서 빈 공간으로 남은 곳도 있다. 이게 ‘엑스포 이후 공허’ 문제의 실체다.

지구의 날 주간과 여수엑스포, 왜 자꾸 엮이는가
지구의 날은 1970년 미국에서 시작된 환경 캠페인이 기원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시민단체 중심으로 기념하다가, 지금은 환경부가 지정하는 ‘기후변화 주간'(보통 4월 22일 전후 일주일)으로 정착했다. 이 시기에 전국 지자체에서 환경 행사가 쏟아지는데, 여수는 엑스포 유산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된다.
사실 이게 약이자 독이다. 여수엑스포는 해양 환경을 주제로 내걸었기 때문에 지구의 날 시즌에 언론이 한 번씩 다시 꺼내 든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면 ‘기후 대응 유산’으로서의 상징성은 약한 편이다. 빅오는 쇼 중심이고, 아쿠아플라넷은 수족관이라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해양 기후 연구나 교육 기능이 부지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건 국내 대형 국책 이벤트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제는 거창하게 잡는데, 끝나고 나면 주제를 계속 끌고 갈 상시 조직이 약하다.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전부 그랬다. 그래서 지구의 날 주간마다 ‘여수엑스포 이후 우리는 뭘 했나’라는 질문이 반복되는 것이다.
여수 앞바다, 13년 동안 실제로 어떻게 변했을까
정작 중요한 건 부지 얘기가 아니라 그 앞의 바다 아닐까. 여수엑스포가 내건 ‘살아있는 바다’라는 주제 기준으로 보면 남해안의 실제 환경 지표는 썩 좋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 발표를 보면 한국 연근해 표층 수온은 최근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오르고 있고, 이 상승폭이 세계 평균보다 크다는 게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남해안도 예외가 아니다.
수온이 오르면 뭐가 문제냐. 일단 어종이 바뀐다. 멸치나 갈치 어획량이 해마다 출렁이고, 잡히는 어종 구성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반면 아열대 어종이 올라오는 빈도가 늘었다. 양식 쪽도 영향을 받는다. 여름철 고수온으로 어류 폐사 뉴스가 남해안에서 거의 연례 행사처럼 나오는 게 현실이다.
또 하나 주목할 건 해양 산성화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한 바다는 pH가 낮아지는데, 이게 조개류, 굴, 전복 같은 석회질 생물에 타격을 준다. 여수·통영 일대의 굴 양식이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다. 엑스포 때 국제 사회에 내걸었던 ‘숨쉬는 연안’이라는 슬로건이 13년 뒤에 더 무거운 질문으로 돌아온 셈이다.
여수선언과 여수 프로젝트, 지금은 뭐가 남아 있을까
엑스포 당시 채택된 여수선언의 핵심은 ‘개발도상국의 해양 역량을 선진국이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구체화한 게 여수 프로젝트(Yeosu Project)인데, 해양수산부와 국제 기구가 협력해서 개도국 공무원 연수, 해양 기술 이전 같은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완전히 끊긴 건 아니라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일반 시민이 체감하기엔 거리가 멀다. 여수 시민도 ‘여수 프로젝트’가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좋은 취지의 사업도 홍보와 연결 지점이 없으면 존재감이 약해진다. 지구의 날 주간에 이런 사업을 다시 끌어올려서 시민 체험형 프로그램과 연결하면 어떨까 싶다. 엑스포 부지에서 남해안 해양 환경 교육을 상설화하는 방향 말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부산 APEC 기후센터는 꾸준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데, 여수도 그런 거점 기능을 살릴 수 있는 자산이 충분하다.
여수엑스포 유산, 앞으로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얹자면, 여수엑스포 부지는 ‘관광지’보다 ‘기후 대응 거점’으로 포지셔닝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관광만 놓고 보면 여수는 이미 밤바다, 낭만포차, 향일암 같은 강력한 콘텐츠가 있다. 엑스포 부지가 이 관광 자원과 경쟁하면 애매해진다. 반면 해양 기후 연구·교육·국제 협력이라는 축은 국내에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이런 식이다. 상설 해양기후 전시관, 남해안 어업인과 연구자가 만나는 포럼 공간, 개도국 연수생 체류 기숙사, 청소년 해양 과학 캠프. 이걸 연중 운영하면 평일 공실 문제가 줄어든다. 또 지구의 날 주간에는 국제 심포지엄을 고정 개최하는 식으로 루틴을 만들면, ‘지구의 날 = 여수’라는 연결이 자연스럽게 굳어질 수 있다. 지금은 그 연결고리가 헐겁기 때문에 기자들이 매년 아쉬움 섞인 기사를 반복해서 쓰는 것 같다.
오늘부터 딱 하나만 해보자면
여수까지 갈 여유가 없어도 괜찮다. 지구의 날 기후변화 주간에 해볼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내가 사는 도시 앞바다나 강이 최근 10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뉴스 한두 개를 찾아 읽어보는 것이다. 여수엑스포가 13년 전에 띄운 질문도 결국 ‘네 앞의 바다는 안녕하냐’였다. 거창한 실천 목록보다, 그 질문 하나를 오늘 저녁에 한 번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