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한 줄로는 안 보이는 진짜 상황
아침에 커피 내리면서 뉴스를 켰는데 ‘한국 유조선 홍해 무사 통과’라는 자막이 지나간다. 대부분은 ‘아 다행이네’ 하고 넘긴다. 근데 이 한 줄 뒤에는 선사 관제실에서 며칠 밤을 새운 사람들, 보험료 견적서를 다시 뽑은 담당자, 수에즈 대신 희망봉으로 돌릴지 두 번 세 번 계산기 두드린 본사 회의실이 숨어있다. 홍해를 지난다는 건 지금 시점에서 단순히 기름 싣고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예멘 후티 반군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2023년 말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고,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면서 글로벌 해운 지도 자체가 바뀌었다. 그 와중에 한국 선박이 무사히 지나왔다는 건 생각보다 꽤 의미 있는 장면이다.

홍해가 왜 이렇게 중요한 길이 됐나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홍해는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좁고 긴 바닷길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기름이나 컨테이너를 보낼 때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 길을 못 쓰면 아프리카 남쪽 희망봉을 빙 돌아야 하는데, 거리로만 따져도 6000해리 넘게 추가되고 시간은 10일에서 2주 더 걸린다. 그만큼 연료비가 더 들고, 선원들 인건비도 늘고, 화주 입장에서는 물건 도착이 늦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2023년 가을까지만 해도 이 길은 그냥 당연한 고속도로였다. 하루에 50척 넘는 배가 지나다녔다. 근데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과 연결된 선박을 노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국적이 뭐든, 소유주가 누구든 불확실하면 일단 피하자는 분위기가 됐다. 머스크, MSC 같은 글로벌 선사가 줄줄이 희망봉 우회를 선언했고, 일부 선사만 조심스럽게 홍해를 택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국 유조선이 그 길을 택한 이유
국내 선사가 홍해 경로를 유지하는 데는 몇 가지 계산이 깔려있다. 첫째는 운임이다. 원유나 석유제품을 수송하는 유조선은 하루 용선료가 수천만 원 단위다. 희망봉으로 돌면 항해 일수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배를 오래 묶어두는 셈이 된다. 둘째는 화주와의 계약 조건이다. 정해진 시점에 유럽 항구에 도착해야 정유사나 트레이더가 제값을 받는다.
근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그냥 돈 때문에 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다. 한국 선사들은 대체로 이스라엘 자본과의 연결고리가 옅고, 국적 자체가 무장세력의 타깃 리스트에서 상대적으로 후순위다. 이런 정치적 포지션을 파악한 뒤에야 ‘통과해도 리스크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사가 판단한다. 해양수산부와 해군도 상황을 계속 공유하고, 아덴만 파병 청해부대가 주변 해역에 있다는 점도 무시 못 하는 변수다.

선사 내부에서 이 결정이 내려지는 방식
외부에서 보면 ‘회장님이 지나가라 그랬다’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출항 며칠 전부터 안전 관제팀, 운항팀, 보험팀, 법무팀이 한 방에 모인다. 가장 먼저 보는 건 최근 일주일간 공격 발생 좌표다. 어느 해역에서 몇 건, 어떤 방식으로 공격이 있었는지 지도에 찍어본다. 그 다음에 영국 해군이 운영하는 UKMTO 같은 해상안보 센터의 권고를 받고, BIMCO가 공유하는 통항 가이드라인도 검토한다.
보험 쪽은 더 복잡하다. 전쟁 위험 보험료가 평소의 몇 배로 뛰기 때문에,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추가 비용이 수억 원 단위로 나온다. 그래도 희망봉 우회 비용과 비교하면 여전히 홍해가 싸다는 계산이 나오면 통과로 결정된다. 선박 쪽에서도 준비를 한다. 야간 등화를 최소화하고, AIS 신호를 일부 조정하고, 갑판에 철조망과 물대포를 배치한다. 선원들에게는 해적 대응 훈련을 사전에 돌린다. 은근 영화 같은 풍경이다.
통과 순간 실제로 벌어지는 일
바브엘만데브 해협 근처에 들어서면 선장은 함교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속도를 끌어올려 가능한 한 빠르게 통과한다. 선체가 빠를수록 타격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선원 대부분은 갑판 밖으로 못 나가고, 안전구역이라 불리는 선체 중앙부에 대기한다. 위성 통신은 본사 상황실과 계속 연결되어 있고, 근처에 있는 다국적 해군 함정과도 교신이 오간다.
통과 시간은 대체로 하루 이틀 정도다. 이 시간이 선사 입장에서는 가장 긴 이틀이다. 한 번은 드론이 근접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우회 기동으로 피했고, 또 한 번은 미확인 선박이 접근해서 청해부대에 지원 요청이 들어간 적도 있다. 전부 공개된 건 아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다들 알고 있는 장면들이다. 통과를 마치고 수에즈 입구에 닿으면 선장은 본사로 짧게 보고한다. ‘통과 완료, 선원 이상 없음.’ 그거면 충분하다.
한국 경제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기름 한 척이 지나간다는 건 단지 그 회사 매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원유의 거의 전량을 수입한다. 중동에서 실어온 원유가 제때 유럽이나 다른 지역으로 중계되거나, 반대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항로가 안정되어야 정유사 재고가 돌고 주유소 기름값이 흔들리지 않는다. 홍해가 막히면 당장 해운 운임이 오르고, 몇 달 뒤에는 유가에도 영향이 간다.
실제로 2024년 초 홍해 사태가 본격화되자 컨테이너 운임 지수는 두세 배로 튀었고, 유조선 용선료도 급등했다. 그 충격이 한국 수출입 물가에 반영되기까지는 한 분기 정도 걸렸다. 반대로 한국 선사들이 안정적으로 통과 루트를 유지한다는 건 이런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해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별로 티는 안 나지만 생활물가 뒤에 숨어있는 중요한 구조다.
앞으로 이 상황은 어떻게 풀릴까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 홍해가 완전히 평화로워지긴 어렵다. 예멘 내전과 중동 전반의 지정학이 해결되지 않는 한 산발적 공격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국적 해군 연합인 프로스페리티 가디언 작전이 진행 중이지만, 그게 바다 전체를 커버하지는 못한다. 선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는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된다’에 베팅하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장기적으로 북극항로나 육상 철도 같은 대체 루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다만 북극항로는 계절적 한계가 있고, 철도는 용량이 제한적이라 홍해-수에즈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결국 당분간은 지금처럼 ‘상황 봐가며 조심스럽게 통과’하는 패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유조선이 이번에 무사히 지나왔다는 건 이 패턴이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독자 입장에서 기억할 점 하나
뉴스에서 ‘유조선 홍해 통과’라는 자막이 지나갈 때, 단순히 먼 바다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으면 좋겠다. 오늘 내 차에 들어간 기름, 마트에서 산 수입 과자, 주문한 유럽산 가전의 배송일까지 전부 이 좁은 바닷길 위에서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 거창한 관심까지는 아니어도, 다음에 주유할 때 가격이 갑자기 오르거나 내릴 때 ‘아 혹시 그쪽 상황 때문인가’ 한 번쯤 떠올려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바다는 생각보다 우리 지갑과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