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을 때 이건 피해야 한다 — 약과 상극인 음식 총정리

약을 받아오면 대부분 집에서 손에 잡히는 걸로 삼킵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주스, 아침에 마시던 커피, 아니면 그냥 빈속에 물도 없이. 딱히 나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하는 행동인데, 이게 약효에 꽤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먹는 음식 하나 때문에 약이 반도 안 듣거나, 반대로 성분이 과하게 쌓여서 부작용이 생기거나. 병원에서 처방받고 제대로 복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자몽과 고지혈증약·혈압약 — 약효가 두 배라는 게 좋은 게 아니다

자몽이 약이랑 상극이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근데 왜 그런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몽에는 간에서 약을 분해하는 효소(CYP3A4)를 방해하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약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고 혈액 속에 더 오래, 더 많이 남아 있게 됩니다.

고지혈증 약인 스타틴 계열(아토르바스타틴, 심바스타틴 등)이 대표적입니다. 자몽 주스 한 잔이 이 약의 혈중 농도를 몇 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고, 그러면 근육이 손상되는 부작용 위험이 높아집니다. 고혈압 약 일부, 면역억제제, 수면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자몽을 먹고 나서 몇 시간 뒤에 약을 먹어도 영향이 남는다는 겁니다. 오전에 자몽을 먹고 저녁에 약을 먹어도 효소 억제 효과가 이미 시작된 상태입니다. 가능하면 해당 약을 복용하는 기간 동안은 자몽 자체를 끊는 게 낫습니다. 오렌지나 다른 감귤류는 괜찮습니다. 자몽 특유의 성분이 문제인 거라서, 일반 귤이나 레몬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우유와 항생제 — 잘 낫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을 수 있다

테트라사이클린, 독시사이클린, 시프로플록사신 같은 항생제는 칼슘과 결합하면 흡수가 크게 떨어집니다. 우유 한 잔이 이 항생제의 흡수율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습니다. 항생제를 꼬박꼬박 먹었는데 감염이 잘 안 잡힌다 싶으면, 우유나 요거트를 함께 먹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칼슘뿐만 아니라 마그네슘, 철분, 알루미늄(제산제에 많이 들어 있음)과도 비슷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종류 항생제는 보통 복용 전후 2시간은 유제품, 제산제, 철분제를 피하라고 안내합니다. 매 끼니에 밥이랑 같이 먹는 스타일이라면 식사 시간에 맞춰 복용 시간을 조정하는 게 좋습니다.

근데 모든 항생제가 다 그런 건 아닙니다. 페니실린 계열이나 세팔로스포린 계열은 음식과 함께 먹어도 흡수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처방받을 때 약사한테 유제품 상관없는지 한 번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시금치·브로콜리와 혈액희석제 — 건강식이 독이 되는 상황

와파린은 심방세동이 있거나 혈전 예방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복용하는 약입니다. 이 약은 비타민 K와 직접적으로 충돌합니다. 와파린이 혈액응고를 방해하는 원리가 비타민 K의 작용을 막는 것인데, 비타민 K를 갑자기 많이 먹으면 약효가 감소하고, 반대로 확 줄이면 약이 과하게 작용해서 출혈 위험이 높아집니다.

비타민 K가 많은 음식은 녹색 채소입니다. 시금치, 브로콜리, 케일, 깻잎, 미역 같은 것들. 건강에 좋다고 갑자기 샐러드 식단으로 바꾸거나, 반대로 원래 먹던 나물 반찬을 갑자기 끊거나 하면 와파린 효과가 불안정해집니다. 아예 안 먹는 게 아니라, 평소처럼 일정하게 먹는 게 오히려 낫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문제입니다.

건강 챙긴다고 녹즙이나 클로렐라를 갑자기 시작하면 와파린 복용 중에는 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담당 의사한테 먹고 싶은 보충제나 식단 변화를 미리 말하는 게 좋습니다.

커피·차와 철분제 — 빈혈 약이 안 듣는다 느껴진다면

철분제는 공복에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빈속에 먹으면 속이 쓰리다고 식후에 챙겨 먹습니다. 그런데 식후에 커피나 홍차를 마시면 거기서 또 문제가 생깁니다. 커피와 차에 들어 있는 탄닌 성분이 철분과 결합해서 흡수를 방해합니다. 철분제 먹으면서 커피를 매일 두세 잔씩 마시면 빈혈 수치가 잘 안 올라오는 이유가 됩니다.

흡수를 방해하는 건 커피와 차만이 아닙니다. 칼슘도 철분 흡수를 줄입니다. 철분제를 우유와 함께 먹거나, 철분제와 칼슘제를 같은 시간에 복용하면 둘 다 흡수율이 떨어집니다. 따로따로 최소 2시간 간격을 두는 게 좋습니다.

반대로 비타민 C는 철분 흡수를 높입니다. 철분제를 오렌지 주스나 비타민 C 음료와 함께 먹으면 흡수가 올라가는 편입니다. 속이 쓰린 분들은 소량의 음식과 함께 먹되, 커피나 차는 복용 후 최소 1시간은 피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갑상선약과 두유·커피 — 타이밍이 전부다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레보티록신(씬지로이드 등)을 복용 중이라면 아침 식전에 먹으라는 안내를 받았을 겁니다. 이 약은 공복 흡수가 중요한 약입니다. 음식과 함께 먹으면 흡수율이 뚝 떨어집니다. 특히 두유가 문제입니다. 두유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 성분이 갑상선 호르몬 흡수를 방해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칼슘 보충제, 제산제, 철분제, 마그네슘도 갑상선 약 흡수를 방해합니다. 이것들은 갑상선약 복용 후 최소 4시간은 간격을 두는 게 권장됩니다. 그런데 아침 바쁜 시간에 뭘 4시간씩 따지면서 먹기가 어렵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갑상선약만 먼저 먹고 30분 이상 지나서 아침을 먹는 방식을 많이 씁니다.

커피도 갑상선약 흡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부터 마시는 분들은 갑상선약을 먼저 물로 삼키고, 최소 30~60분 뒤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진통제와 알코올 — 간에 가는 부담이 배가 된다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은 열이 나거나 가벼운 통증에 가장 흔하게 쓰는 약입니다. 처방 없이 살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어서 아무 때나 먹는 분들이 많은데, 술을 마신 날은 다릅니다. 알코올도 간에서 대사되고, 아세트아미노펜도 간에서 처리됩니다. 두 가지가 겹치면 간 독성이 올라갑니다. 특히 술을 자주 마시는 분들이 통증 때문에 타이레놀을 상용하면 간 손상 위험이 실제로 높아집니다.

이부프로펜(애드빌, 부루펜 계열)이나 나프록센 같은 소염진통제는 위장 점막을 자극하는 편인데, 술과 함께 먹으면 위출혈 위험이 올라갑니다. 술자리에서 두통이 온다고 약을 챙겨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 조합은 속에 꽤 좋지 않습니다.

혈당 낮추는 약(메트포르민 등)도 알코올과 같이 먹으면 젖산산증이라는 드물지만 위험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당뇨 약 복용 중에 음주를 하게 된다면 담당 의사와 미리 상의하는 게 좋습니다. 항생제 중 일부(메트로니다졸 등)는 술과 만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심박수가 빨라지는 반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딱 하나만 바꾼다면, 약을 먹을 때 물 이외의 음료로 삼키는 습관을 끊는 겁니다. 커피, 주스, 우유 전부 나름의 이유로 약 흡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약국에서 약을 받을 때 음식 주의사항 한 번만 물어보면 됩니다. 약사들이 이 질문을 가장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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