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을 치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셔틀콕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측도 하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처음엔 ‘저 사람은 운동을 오래 해서 그렇겠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6개월밖에 안 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궁금해졌다. 저 사람은 그냥 타고난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게 있는 건가.
순발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꼭 두 부류로 나뉜다. ‘그건 유전이야, 어쩔 수 없어’라는 쪽과 ‘꾸준히 훈련하면 누구든 빨라질 수 있어’라는 쪽. 둘 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둘 다 반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순발력이란 게 정확히 뭔가
먼저 용어를 좀 정리해두자. 순발력은 흔히 ‘빠른 반응’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는데, 사실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반응 속도다. 자극을 감지하고 몸이 움직이기까지 걸리는 시간. 공이 날아올 때 눈으로 보고 뇌가 신호를 보내고 근육이 수축하는 그 과정 전체다. 둘째는 근육의 폭발력이다.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느냐. 셋째는 협응력인데, 여러 근육이 얼마나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움직이느냐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유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건 두 번째, 근육의 폭발력이다. 반응 속도와 협응력은 훈련으로 꽤 올릴 수 있지만, 근육 자체의 특성은 태어날 때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근육 섬유 타입이 핵심이다
사람의 근육은 크게 속근(빠른 근육 섬유)과 지근(느린 근육 섬유)으로 나뉜다. 속근은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는 데 특화돼 있고, 지근은 오래 버티는 데 강하다. 100m 달리기 선수들은 속근 비율이 높고, 마라톤 선수들은 지근 비율이 높은 편이다.
문제는 이 비율이 유전으로 결정된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속근과 지근의 비율은 50:50 정도인데, 사람마다 40:60이 될 수도 있고 60:40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비율은 훈련으로 의미 있는 수준으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속근 위주로 훈련하면 속근이 발달하고, 지근 위주로 훈련하면 지근이 발달하는 건 맞지만, 비율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다.
ACTN3라는 유전자도 자주 언급된다. 이 유전자는 속근 섬유가 잘 작동하도록 돕는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이 유전자의 특정 변이(RR 타입)를 가진 사람이 폭발적인 운동 능력에서 유리한 경향이 있다. 올림픽 단거리 선수들 중에 이 변이를 가진 비율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근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ACTN3 하나가 순발력 전체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운동 능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는 수백 가지가 넘고, 각각의 영향은 꽤 작다.

유전자가 유리해도 훈련 안 하면 의미 없다
쌍둥이 연구 결과들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한 명이 꾸준히 운동하고 한 명이 안 하면, 수년 뒤에 순발력 차이가 상당히 벌어진다. 유전자가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순발력에서 유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연구마다 다르게 보는데, 대략 50~70% 정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나머지 30~50%는 훈련, 환경, 생활습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게 적어 보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꽤 큰 여지다. 유전적으로 불리한 사람도 훈련을 통해 유전적으로 유리하지만 훈련을 안 한 사람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실제로 신체 조건이 비슷한 두 사람을 비교했을 때, 플라이오메트릭 훈련(점프, 스프린트, 방향 전환 등 폭발적 동작 위주 운동)을 꾸준히 한 쪽이 반응 속도와 폭발력 모두에서 의미 있는 향상을 보인다. 일반인 기준으로 6~8주 정도면 변화가 체감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은 무조건 떨어지나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는 그렇다. 속근 섬유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30대 중반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해서 60대가 되면 젊었을 때보다 속근 비율이 꽤 낮아진다. 반응 속도도 마찬가지로 20대가 피크고 이후엔 완만하게 느려진다.
근데 여기서도 ‘어느 정도는’이라는 단서가 중요하다. 꾸준히 운동한 60대와 운동을 안 한 30대를 비교하면, 60대가 더 나은 경우도 생긴다. 나이에 따른 자연 감소를 훈련이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거다.
더 중요한 건 협응력과 예측 능력이다. 경험이 쌓이면 자극을 보고 반응하는 게 아니라, 자극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능력이 생긴다. 배드민턴 고수들이 초보자보다 더 여유 있어 보이는 건, 반응이 빨라서가 아니라 상대가 어디로 칠지 미리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도, 유전이 불리해도 키울 수 있다.
그러면 순발력은 어떻게 키우나
훈련 방식 자체가 중요하다. 같은 시간을 운동해도 어떤 방식이냐에 따라 순발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
속근을 자극하려면 무조건 폭발적인 동작이 들어가야 한다. 천천히 조깅하는 건 지구력에는 좋지만 순발력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 대신 짧은 거리 전력 질주, 방향 전환 훈련, 박스 점프 같은 동작들이 속근을 직접 자극한다. 주 2~3회, 한 세션에 20~30분 정도만 해도 몇 주 지나면 체감이 달라진다.
반응 속도는 반복 노출로 빨라진다. 같은 자극에 반복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뇌와 근육 사이의 신호 전달이 효율화된다. 탁구공 리시브 연습, 드롭 앤 캐치(누군가 위에서 자를 떨어뜨리면 잡는 훈련), 또는 게임에서 빠른 버튼 입력 연습 같은 것들이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뇌 차원에서의 처리 속도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피로한 상태에서 순발력 훈련을 하면 효과가 반감되고 부상 위험이 올라간다. 순발력 훈련은 가능하면 세션 초반에, 몸이 충분히 깨어 있을 때 해야 한다. 지쳐서 하는 폭발적 동작은 근육에 올바른 신호를 주지 못한다.
유전적으로 불리해도 실망할 필요 없는 이유
엘리트 스포츠 세계에서는 유전자 차이가 결정적일 수 있다. 0.01초를 다투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속근 비율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순발력이 필요한 대부분의 상황은 다르다. 운전 중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을 때 균형을 잡는 능력, 공이 날아올 때 피하는 능력. 이런 것들은 유전자 차이보다 얼마나 신체를 꾸준히 활성화해왔느냐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운동을 전혀 안 하다가 꾸준히 활동적으로 지내기 시작한 사람들이 ‘몸이 예전보다 빨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착각이 아니다. 근신경계가 활성화되고, 협응력이 좋아지고, 신호 전달이 효율화되면서 실제로 반응이 빨라진다.
오늘부터 딱 하나만 해본다면, 앉아서 일하는 중간중간 5분씩 빠른 페이스로 걷거나 가볍게 뛰어보는 것도 시작이다. 순발력 훈련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일단 근신경계를 자주 깨워주는 것부터가 첫걸음이다.


